지은이 이름은 박까리. 서울 토박이다.
시골의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나이 들수록 참 부러워한다. 그들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어 보이니까.그녀는 삶의 씨를 제대로 뿌려야만 하는 귀중한 젊은 날들을 객기로 모두 날렸다고 한탄하며 살았다. 구멍 숭숭 뚫린 시간조각들을 주워 모으면서 얼마나 많은 자책과 후회를 하였던가? 뒤늦게 철이 들면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들이 지나간 수많은 어제보다 훨씬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객기로 버려진 시간들이 글을 쓰게 해 주는 그녀만의 사투리가 되고 고향이 될 줄이야.그녀는 결혼 후 식구들과 함께 지구 남반부에 위치한 호주라는 섬대륙으로 날아갔다. 시드니 노스쇼어에 터를 잡고 20년 남짓 살았다.
타국이기에 피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과 불분명한 정체성에 부딪치면서 전쟁같은 세월을 보냈다. 40살 넘어 별 볼 일 없는 나이에 그곳 대학에서 유아교육학과를 공부하고 바닷가 근처 동네에 아담하고 정겨운 어린이집을 열었다.뒤죽박죽, 좌충우돌 부수어진 삶의 돌멩이들을 모퉁이 머릿돌로 쌓게 해 준 소중한 몇몇 인연들을 그녀는 호주에서 만났다. 반려견 스노우가 그 인연들 중의 하나로 그녀 삶 속에 들어왔다. 그것은 실로 커다란 행운이었다.
식구들이 끝 모를 터널 안에서 빛을 못 찾고 허둥댈 때 스노우는 살아갈 방향을 잡아 주고 앞으로 같이 걸어가 주었다. 아주 단순하게. 그냥 그 자리에 머물면서 귀를 열어 들어주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기만 했을 뿐인데.먼 시간 지나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왔다. 눈 돌아가게 급변하는 한국에 적응하기란 타국에서 사는 것만큼 녹록지 않았다. 오래 떠나 있던 한국의 빈자리는 물과 기름처럼 그녀를 겉돌게 만들었다.
호주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스노우가 자꾸 생각났다. 그럴 적마다 녀석과 같이 지낸 시간들이 연기처럼 흩어질 것 같아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선명한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따뜻했던 스노우와의 시간을 정리하고자 마음먹었다.신에게 사랑이 있음을 그녀는 굳게 믿는다.
신의 사랑은 사람이 지독하게 외로웠을 때 선택한 잘못된 길을 선한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이끈다. 바로 반려견 스노우가 그 사랑의 실체였음을 이 글을 통해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스노우는 그녀에게 구수한 사투리로,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길을 찾아 주었다.